맹약(盟約)을 한 사람과의 약속도 이내 깨어져

'멍게'가 '멍부'보다는 낫다

'정의'로우면서 '똑똑'하고 '부지런한'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

[국토일보 노익희 기자] 운명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을 운명이라고 정의해 보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렇게 다정하던 사람과 등을 돌리게 되고 맹약(盟約)을 한 사람과의 약속은 이내 깨어지기도 한다. 영원을 함께 하자던 사람과의 이별 뒤에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수용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이게 된다.

만필(漫筆)을 쓰는 필자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운명적으로 고향을 떠나게 되고 우연하게 파충류사업을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뱀에게 물려 본적은 있지만 한 번도 만져 본적 없고 키워 본적 없었던 파충류를 키우게 되고 아이들에게 체험시켜주며 사업을 하였던 것이 운명으로 비유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급기야 가족을 멀리 두고 집을 떠나 대전과 충남 공주에서 폐교된 학교를 두 개나 빌려 파충류박물관을 경영하게 되었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운동장을 홀로 청소하거나 그 큰 학교를 혼자 가꾸고 박물관으로의 모습을 만들어 가면서 느꼈던 큰 고독(孤獨)은 어떤 말로도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당시의 감회는 특별했었다. 지금은 죽어서 박제된 가비알이라 불리는 희귀 악어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가람아, 너는 내가 언제까지 가족과 떨어져 이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야심한 시간에 집이 그리워 혼자 악어나 큰 비단뱀과 이런 대화를 하였다면 이상한 사람이라 여겨지겠지만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신문기자로 살던 삶은 어느 날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으로 바꿔지게 되고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졌다. 사업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던 친구가 한 날 찾아와 사업을 만류하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경험을 만들어 주고 더 큰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희망은 그 길을 계속 걸어가게 했었다. 덕분에 알게 된 말이 없는 파충류들의 눈빛과 예기치 않았던 감독관청들의 제재, 평범하지 않은 사업에서 일어나게 되던 크고 작은 사연들에서 인생의 깊은 맛을 배우게 되었다면 사족(蛇足)이 될까?

지금은 퇴직하신 한 교장선생님은 멍게 이야기를 해 주었었다. “교육지도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중에 멍게가 멍부보다는 낫다”고 농반(弄半)으로 나누던 이야기.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멍청하면서 부지런 하면 쓸데없는 문서를 많이 만들게 되고 불필요한 업무를 늘려 선생님들을 고단하게 하니 차라리 멍청한 관리자라면 게으른 게 더 낫다는 이야기였다. 고마운 분이어서 더 기억나던 멍게 이야기는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운명적이지만 내가 하는 일이 ‘멍부’의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대목이다. 인생은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시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길이 잘 사는 길인지 또는 허망한 삶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 저런 인생을 살면 참 행복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던 어떤 이의 삶은 이내 가련함으로 다가오고 ‘저런 권력을 지니고 살면 부러울 게 없겠구나’ 라고 생각되던 이의 그것도 인생무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국가의 일을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것을 국정농단이라고 말한다. 그 주범들의 여러 얼굴들을 보면서 가련함과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금력과 권력을 다가진 자들이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여 끌려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위로를 받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사업을 만류하던 정의로운 절친 성우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가고, 어떤 이는 알기 어려운 논리를 말하며 태극기를 들고 정의를 외친다. 지금도 멍게를 말하며 웃던 퇴직교장의 말씀이 선하다. “똑똑하고 부지런 하면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지만 많이 배울 수 있고, 멍청하고 부지런 하면 배가 완전히 산으로 가게 되죠”라던.

거둬들이기 어려운 잘못을 저지르고도 진실공방을 벌이는 멍게 정부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고, 삼성전자의 전경련 탈퇴로 몰락하게 되는 멍부 재벌들과 멍부 전경련을 바라보고, 고영태 최순실의 법정다툼에 극단적인 저급함을 느끼게 된다. 박채윤의 코스프레에 올해 대종상 후보들은 위축되어야 하고 저마다 차기 대선 후보들은 검정절차 없이 대선 고지를 향해 난립하기 시작한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진실(眞實)은 어느 곳에 있는가? 어느 쪽이 더 문제(問題)인가? 역사(歷史)는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가? 정치권 모두의 화두가 부패청산과 공정사회의 실현으로 비춰진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가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가 서지 않는 나라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네 살짜리 딸조차도 보호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체제와 부도덕한 사람들을 응징하고 죽었던 리투아니의 살인사건 드라슈스 케디스의 한계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쉬움과 슬픔이 진하게 밀려온다. 경제의 안정이 필요하고 정치의 봄이 입춘과 함께 와야 하고 가정과 사회와 나라에 평화가 찾아 와야만 하는 풍전등화의 시대다. 그는 어디에 있는가? 정의로우면서 똑똑하고,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그런 ‘똑부’ 지도자는.......

본보 취재본부장 노익희 kld@ikld.kr